의보감의 목차를 정하신 분은 양혜수이다. 동의보감의 목차는 형상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양혜수가 지은 의림촬요를 동의보감 편찬할 때에 참고하였음으로 알 수 있다. 양혜수가 전의중에 가장 수장이었을 때에 허준이 궁중에 들어갔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양혜수는 나쁜 놈으로 허준을 뛰어난 인물로 부각시켰다. 예전에 의사는 중인으로 양반이 아니었다. 양반이 양혜수를 오라 하였다. 며칠 굶은 사람을 보이고 무슨 병이냐고 물었다. 양혜수는 “아무 병도 아니고 다만 며칠 굶었으니 잘 먹이십시오.”라고 대답하였다. 양반이 내가 잘못하였다고 사과하였다. 이와같이 양혜수는 뛰어난 의사였다.
허준은 동의보감을 편찬하였다. 컴퓨터도 없는 세상에 이런 훌륭한 책을 만들었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의보감은 대부분의 한의서들이 질병중심으로 구성되엇지만, 동의보감은 사람의 몸을 중심으로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다.(이러한 내용을 필자의 논문 ‘동의보감의 목차에 대한 연구에 자세히 밝혔다) 동의보감의 우수성과 독창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양예수와 허준이 이러한 훌륭한 책을 만들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또 하나의 오류는 해부에 대한 것이다. 한의학은 본래 형상의학이다. 몸속의 오장육부가 얼굴에서는 이목구비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오장육부의 상태를 알아보는 학문이다. 사람 개개인의 오장육부가 다 다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유교사상이 팽배한 시대에 스승의 배를 갈라 제자가 오장육부를 살펴본다. 드라마의 극적인 상황이지만, 그것은 한의학의 진실이 아니다.
명의라고 하면 화타 편작을 손꼽는다. 그 중 편작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소개하겠다. 편작은 3형제중에 막내였다. 왕이 편작에게 그대는 명의라고 말하자, 편작은 말한다. 아닙니다. 왕이시여! 저의 큰 형님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 전에 미리 손을 쓰시고 둘째형님은 사람들이 조금 불편해하면 손을 써서 편하게 합니다. 저 편작은 사람들의 병이 뼈에 미쳐서 칼을 쓰고 수술을 하여 고치니 저는 미천하기 그지없습니다. 하긴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검사를 많이 하고 기계가 윙윙대며 돌아가면 무언가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치과에 가서 치료하는 것보다는 칫솔질을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편작의 첫째 둘째형님들은 사람들이 병을 예방하도록 하였다. 생활의 법도를 잘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의학은 자연을 이용하여 병을 예방하고 건강하게 살도록 말한다. “문자이전에 대자연이 있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살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한의사의 본분인 것이다.
옛날 명의들은 대개 효자였다. 왜냐하면 부모가 편찮으실 때에 병에 대해 알아야 의사들이 제대로 치료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명의가 된 유래를 보면, 용의(돌팔이)한테 처나 부모 자식 혹은 본인이 잘못 치료받아 고생하거나 목숨을 잃은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약재를 믿을 수 없어 직접 캐러 다녔다. 요즘에는 의사에게 제일 소중한 몸을 그냥 맡기고 있다. 알고 맡긴것인지, 심지어는 기계에 맡기기도 하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의사를 믿지 않으면 병을 고칠 수 없다. 일단 자신의 몸을 믿고 맡겨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면 안 된다. 의문나는 점이 있으면 물어야겠지만 의사의 지시대로 몸을 소중히 하여 섭생(생활습관)에 주의해야 한다. 약을 제때에 먹어야한다. 금하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아주 하찮은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세태가 속고 속이는 그런 세상이지만 의사와 환자사이는 서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믿음은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이다.” 이렇게 홈피를 만드는 것은 서로 믿는 한의원이 되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인 것이다.